2014년 5월 26일 월요일

부산일보[예술인칼럼 '판'] 정(情)

지난해 3월, 부산과 창원에서 음악 하는 사람 몇몇이 모여 대통령 취임 축하공연을 한 적이 있다. 

공연 후 술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 

대통령 선거 전부터 유난히 어느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던 그의 어머니가 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날 당선 결과를 보고 너무나 활짝 웃으시더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그 후보가 좋으냐고 그 친구가 물었더니 어머니는 '불쌍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유난히 정이 많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강의 기적으로 일구어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니까. 

정으로 통하는 사람들이니까 친일 의혹과 독재자라고 비난받는 자의 가족도 두둔해 준다. 

무수한 공약을 폐기하고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해도 정으로 이해하고 넘어가 준다. 

심지어 불법선거 의혹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덮으려는 시도 역시 정으로 넘어가 준다. 

우리의 생명들이 바다 밑으로 허망하게 꺼져 가는 동안 손 놓고 바라만 보았던 정부 최고 책임자의 미지근한 눈물도 정으로 받아 준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학살의 책임자,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자, 불필요한 국책사업으로 우리의 세금을 쏟아 붓고 온갖 비리 의혹을 받는 자들을 그냥 한 번 찡그리며 넘어가 주지 않았는가.

우리는 정이 많은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정은 약한 것을 가여워하고 서로 쓰다듬을 줄 아는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을 주는 저들을 보라. 그들은 절대 약하지도 않고 동정 받을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호통 치는 자들이며,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귀도 없는 자들이다. 

누가 누구를 생각해 줘야 하는 상황인지 우리 자신과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모두 화가 나 있는 듯하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사람들의 그 분노를 외치는 공연과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을 주제로 내민 과자 광고에 나오는 이런 노래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그냥 바라보면 음~.' 아니다. 세상을 국밥처럼 말아 드시는 분들은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그냥 바라만 봐서도 안 된다. 정을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끊임없이 무정한 글을 쓰고, 무정한 노래와 그림을 그리고, 무정한 행진이 필요하다. 

아니면 다시 정에 못 이겨 사는 안타까운 세상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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