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부산일보 [예술인칼럼 '판'] 기타

공연을 하러 다니면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뒤풀이를 가서 얘기를 하다 보면 꼭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어 있다.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기억이 그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동영상을 드래그해 어떤 장면에 딱 맞춰 놓는 것처럼.

나는 기타를 사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는 리코더나 멜로디언 외에 다른 악기는 없었고 가족 중에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서 자줏빛이 도는 국산 일렉트로닉 기타를 샀다. 지금은 나무토막이 되어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수많은 기타를 샀다. 다 싸구려다.

내가 기타를 고를 때 제일 중요한 판단기준은 기타가 얼마나 예쁘냐이다. 보면 참 못생기고 이상하게 생긴 기타들이 있다. 주로 우리나라 기타 공방 같은 데서 만든 것들이 그런데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는 안 들어 봐서 모르겠는데 참 멋도 없고 더럽게 비싸다. 예쁜 기타가 소리도 예쁜 것 같다. 역시 예쁜 여자만 좋아하는 나는 기타도 예쁜 것만 밝히는 외모 지상주의자인가 보다. 아무래도 예뻐야 보고 싶고 잡고 치고 싶고 그렇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기타를 치는 시간보다 만지는 시간이 더 길다. 어떤 때는 기타의 곡선을 바라보고 매끄러운 표면을 쓰다듬고 냄새도 맡아본다. 사람의 손이 하나하나 닿았을 부품 하나하나에 새겨진 글자를 보거나 긁히거나 찍힌 자국을 만져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공연을 다닐 때는 논다고 정신이 없어서 아무데나 세워 두고 넘어뜨리기 일쑤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타와 같이 지냈다. 유치하지만 세상이 싫을 때는 기타가 인간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기타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 남의 기타를 상습적으로 빌려 쓰는 사람을 보면 역시 음악은 도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인가 하다가도 일단은 내 기타가 제일 편하고 아무리 무거워도 기타 치는 사람이 기타를 들고 다니기 싫으면 기타 치지를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이고 일본이고 여기저기 들고 다녔다.

이런 재미없는 얘기를 뒤풀이에서 나누다 보면 또 기타를 꺼내 너도 한 곡 해라, 내 기타 좋제 이러면서 기타에 대해 끝없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 술 취한 나는 꼭 잔을 꽝하고 내려놓으며 소리친다.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 봐야 여자를 다 아는 게 아닌 것처럼 한 기타만 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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