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0일 화요일

김태춘 2013/3/15~3/17 일본 칸사이 투어기

김태춘 2013/3/15~3/17 일본 칸사이 투어기


투어의 배경

일본에 공연 간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첫 반응은 거의 ‘이야, 잘나가네, 좋겠다’이런 거였다. 하지만 막상 그 땐 별로 일본 공연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음... 아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투어를 계획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글쎄. 처음에 나에게 제안한 사람은 같은 레이블에서 활동하는 드린지 오였다. 드린지 오는 레이블안에서는 일본공연의 전문가인 듯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공연도 자주가고 하면서 공연의 요령을 터득한 사람인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1월 즘인가 일본 저가항공으로 가면 싸다는 말에 ‘그냥 함 가보까 별로 할 일도 없는데’ 하고 일본공연을 결정하게 되었다. 결정하고 나니 드린지 오가 순식간에 오사카, 고베, 교토의 공연일정을 잡아 주었다. 일정이 잡힌 후 곧나올 앨범을 준비하느라 1월과 2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2월말이 되어서야 3월초에 일본 공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공연 준비

공연이란건 음악의 연주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노래의 뜻을 모른다면 그 노래를 반도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일본어 가사집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 일본어 가사집을 만들어서 갔더니 호응이 좋았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급하게 일본어를 전공한 친구한테 번역을 맡기고 혹시나 해서 한국말을 존나 잘하는 일본인 친구에게 교정을 맡겼다. 번역이 완료된 후에는 몇 개의 가사집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그린그림이라는 곳에 제작을 맡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일본공연을 기획하기 이전에 개들의 세상이란 노래를 번역한 이누노세카이(犬の世界)라는 곡이 있었다. 그 곡을 바꿀때는 그냥 막연히 언젠가 일본공연을 갈거라 고 생각만 했었는데 어쨌든 일정이 잡혔으니 잘 쓸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것들을 준비하고 앨범 쇼케이스나 다른 공연준비를 하다 보니 일정이 너무 빡빡했고 결국 간단한 회화조차 익히지 않고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비

일본에 가기전에 어떤 악기를 들고 가야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어쿠스틱기타를 꺼야할지 일렉기타를 써야 할 지, 케이스도 하드케이스도 써야하고. 결국엔 내가 자주 사용하는 일렉기타를 쓰기로 하고 통기타 하드케이스를 들고 가기로 했다. 공연하는 곳이 어떤 음향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프리앰프페달과 딜레이페달,기타케이블 등을 챙겼다. 그리고 여분의 피크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카주, 카주홀더도 빠짐없이 챙겼다. 이런것들과 옷, 공연장에서 팔 씨디,가사집,스티커까지 챙기니 어깨가 부서질거 같았다.


일본으로 가는 길

일본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피곤했다. 저가항공사가 인천에서만 왔다갔다하는 까닭에 난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와 다시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는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유있게 도착하여 표를 끊고 짐도 부쳤다. 5일 동안 일본에서 쓸 데이터도 로밍을 했다. 입국수속을 위해서 공항검색대를 향해 긴 행렬 속에 나도 끼여들었다. 입구에는 엑스레이촬영에 대해 한껏 변명을 이쁘지도 않게 지루하게 설명해 놓은 게시물과 함께 엑스레이를 통과한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 공항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속사진을 저렇게 찍는다고 하니 참 기분이 묘했다. 자기 뼈모양을 감추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아나. 한쪽 벽면으로는 한 5개 국어로 안녕히가십시오란 말이 적혀있었다. 검색대는 다소 삼엄해보였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 검색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는 알수 없는 근심과 걱정과 불안이 생긴다. 뭐 잘못한것도 없는데 뭔가 울릴거 같은 느낌. 무사히 검색대를 지나자 요란한 면세점들이 보였다. 저가항공이라서 그런지 탑승게이트도 동떨어져 있었다. 게이트 주변에 짐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니 평평한 회색 콘크리트 위로 비행기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문득 출국수속을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떠올랐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본말도 들리고 서울말도 들리고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비행기에 오르고 이륙하는 순간 난 잠이 들었다. 옆에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던사람도 파란하늘 구름 아래 펼쳐진 바다도 복숭아빛 유니폼을 입은 여자 승무원의 얼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칸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길고 하얗고 재미없는 통로를 지나 입국수속을 마쳤다. 세관원이 내 기타케이스를 보더니 어쿠스틱기타냐고  묻길래 나는 일렉트릭기타라고 얘기를 했다. 가방을 열어 볼까 불안했다.특별한건 없고 그냥 기타케이스에 들어있던 소주 네병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별일 없이 수속을 다 마쳤다.

이동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사카,교토,고베의 교통 시스템은 복잡했다. 요금도 구간단위가 아니고 역단위로 달라져서 표 끊기도 힘들고 한국에 비해서 비싸기도 했다. 게다가 환승하는것도 목적지에 다르고 열차역도 열차를 운영하는 회사에 따라서 다르게 되어 있었다.  물론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에겐 문제가 없겠지만 이곳이 처음인 나에게는 이동하는게 가장 큰 일이었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탈때는 항상 긴장해야 했다. 그 외에 가장 중요한 이동 수단은 걷는 것이다. 역에 내린 후에는 목적지 까지 제법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이때는 아이폰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주변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지도를 이용하는 건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아껴준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처음 목적지는 친구가 사는 이마자토(今里)였다. 공항에서 거의 2시간이 걸려서야 허름한 이마자토역에 도착할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출발을 좀 늦게해서 열차를 이리저리 갈아타서 공항까지 아슬아슬하게 도착을 하기도 했다.

제1회공연(오사카 2013/03/15)

칸사이투어의 첫번째 공연은 오사카에서 였다. 일단 리허설이 6시여서 그 전까지 시내중심가를 돌아다녔다. 공연장은 오사카 니트 카이칸이라는 곳이었는데 신사이바시에서 걸어서 한 삼사십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나중에 도착해서야 한자를 보니 카이칸이 '회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좀 일찍 도착해서 아직 문이 잠겨 있었다. 여섯시가 넘으니 어떤 여자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 공연을 주최한 이노우에씨였다. 경음악실이라거 표시된 그곳은 공연장이라기 보다는 기타앰프 몇대와 키보드 몇 대가 있는 창고같은 곳이었다. 말이 안통하니까 이노우에씨와 나는 구글 번역기를 서로에게 보여 주면서 대화를 했다. 가져온 씨디와 가사집을 한쪽 테이블에 가져다 놓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시간이 다되어 가도 관객이나 같이 공연하기로 한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노우에씨는 오늘 다른 공연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올까 걱정이라고 얘기 하길래 나는 오늘 관객이 아무도 안오면 맥주나 마시자고 얘기 했다. 진심으로 나는 공연보다 맥주마시고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공연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와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정확히 일곱명이었다. 그 중에는 그날 특별히 어머니와 같이 온 사람도 있었다. 첫 순서는 나호코 카메이라는 키보드 연주자였다. 키보드와 디지털 딜레이를 자유롭게 이용해 때때로 극단적인 사운드를 만들어서 자기 느낌을 표현했다. 곡마다 설명을 하는데 난 당연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관객들은 멘트가 끝날때마다 '아~'하며 공감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녹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연주를 마치고 나를 소개 했다. 난 인사를 하고 악기를 챙겨 자리에 앉았다. 일본어 멘트를 적은 수첩도 같이 챙겨서 곡 중간마다 간단한 설명을 했다. 그때마다 관객의 반응은 웃음이나 '에-'였는데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다. 공연은 평소대로 문제없이 했다. 생각치 못한 앵콜이 나와서 앵콜곡에 대한 노래를 영어로 설명하는데 잘 이해못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관객 한분이 모두에게 일본어로 설명해 주니 다들 알아들은 듯했다.내 공연까지 모두 끝났고 이노우에씨는 캔맥주를 꺼내서 나에게 주었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모여서 얘기하거나 같이 공연한 나오코씨와 뭔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일본말을 못하니까 아까 멘트를 도와준 그 분과 간간이 영어로 얘기를 나눴다. 그 분은 자기 베스트 프렌드가 부산에 있는데 혹시 김순이(가명)를 아는지 물어봤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밤이 깊어 모두 돌아가고 정리를 마친 뒤 이노우에씨 등 몇명과 지하철 막차를 타고 헤어졌다. 나는 다른 역에 잘못 내렸고 그 땐 지하철이 끊긴 터라 한시간 반정도 친구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도착했을땐 친구와 친구 동생은 모두 일을 하러 나간 뒤였고 혼자 맥주 두캔을 먹고 잤다.

제2회공연(고베 2013/03/16)

이 날은 친구가 쉬는 날이라서 같이 고베까지 왔다. 리허설이 4시30분까지여서 집에서 일찍나와 몇번의 전철을 갈아타고 고베의 스페이스 에아우(space eauuu)에 쉽게 도착을 했다. 2층에는 재즈레코드바가 있었고 3층이 스페이스 에아우였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느낌은 공연장이라기 보단 세련된 아트 카페의 느낌이었다. 머리를 빡빡깍은 청년이 '키무상?'이러길래 '와타시와김태춘데스'라고 대답하고 한국에서 산 참이슬을 건넸다. 나머지 얘기들은 친구가 일본말로 내 대신 해주었다. 거기에는 작지만 아주 신기한 음향장비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팔각형으로 된 나무스피커였다. 그 여덟개의 면마다 8개의 스피커가 달려있었는데 신기하게 좋은 소리를 냈다. 거기는 따로 기타앰프가 없어서 DI박스에 기타를 바로 연결해서 리허설을 마쳤다. 나가서 근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오니 다른사람들의 리허설이 다 끝난 상태였다. 앉아서 맥주를 한병 마시며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다. 첫순서는 地底紳士(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사람인데 여자 란제리를 입고 클래식 기타를 치며 미성의 목소리를 냈다. 나중에 친구한테 노래가 무슨내용이냐고 물어보니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뭐 이런 내용이라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할 때 왜 여자옷 입고 하냐고 물으니까 '왜냐면 나는 地底紳士니까'라고 설명 해주었다. 두번째는 2o2라는 사람인데 특이 하게도 리켄베커 랩스틸기타를 연주했다. 랩스틸기타를 루프머신과 각종 이펙터에 연결해 랩스틸 기타를 두드린다거나 줄을 긁거나 하여 만들어진 반복적인 리듬위에 연주를 입히는 식이었다. 보다가 나는 밖으로 나가 잘 피지도 않는 담배를 한대 폈다. '내가 지금 말도 안통하는 여기서 뭐하러 왔지? 관객 다섯명 앞에서 공연할라고 이 멀리까지 왔나? 그라고 자들은 도대체 뭐하는 아들이고?'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어떤걸 한다는건 불안 만큼이나 기대도 주는 것 같다. 나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에 세계를 내가 상상하는 그림들로 채워 놓고는 생각치 못한 현실 앞에서 당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니 마음이 편안했다. 꽁초를 하수구에 버리고 다시 space eauuu로 올라가서 맥주를 마셨다. 마루오 마루코라는 사람이 시작했다. 아까 내 리허설이 끝나고 나갈때 그 사람을 마주쳤을 땐 평범한 아줌마인거 같았는데 쥬스하프(jew's harp)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솜씨를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거 같았다. 노래 내용은 전혀 알수없었지만 음악은 멜로디라인이 강하고 일본적으로 느껴졌다. 뭐라고 설명 할수는 없지만 아코디언 연주소리는 듣기 좋았고 감미로우면서도 박력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악마와 나'부터 시작을 했다. 마음 편하고 재밌게 노래했다. 너무 마음이 편해서 였는지 개들의 세상은 가사를 놓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같이 공연했던 사람들과 음악과 음악외적인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코디언을 연주했던 마루오씨는 알고보니 꽤 많은 악기를 다룰줄 알았는데 현재 컨트리밴드에서 아코디언을 치고있다고 했다. 다음에 같이 공연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자기도 좋다고 말은 했다. 기차를 타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왔다.

제3회공연(교토 2013/03/17)

이 날은 리허설이 오후 한시부터였다. 그 전날 잠들기 전엔 너무 피곤해서 고마 리허설 안할란다 마음먹었으나 또 아침이 오니 빨리 챙겨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토까지 가는 길은 고베보다 더 멀고 복잡했다. 기차를 4번 갈아타고 약 30분을 걸어서 가야했다.  3년전에도 와본적이 있었지만 이런느낌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같은 대도시에 있다가 교토에 도착하니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도시가 주는 느낌이 좀 달랐다. 공연장을 찾아 걷는 동안에도 오래된 목조건축물들이 눈에 자주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카페 유스라고는 일반 가정집 중간에 있었다. 나중에 그 주인이 100년된 집을 카페로 바꿨다고 말해줬다. 도착하니까 문이 닫혀 있어서 너무 일찍왔나 싶었는데 어떤 남자가 창문을 열드마 부시시한 차림으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들어가보니 어두컴컴한 다다미 방으로 되어있었다. 키도 훤칠하고 인상좋아 보이는 그 남자는 자신을 쿠로다라고 소개했다. 좀 있으니 다른 여자분을 소개 하면서 녹색(미도리)을 좋아해서 닉네임이 미도리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가게는 구석구석이 녹색으로 가득 차있었다. 방석에서 부터 커튼 컵, 멀티탭까지 녹색으로 가득차 있었다. 쿠로다씨는 녹색에 미친여자라고 설명도 해줬다. 선물로 참이슬소주를 줬는데 그 병이 녹색이라서 너무 좋아했고 전자사전을 가져와 한국말로 뭔가를 계속 설명하고 싶어했다. 앉아서 차를 마시는 동안 쿠로다씨가 트는 블루스 음악이나 포크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리허설을 마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순서는 枡本航太와 쿠로다씨의 공연이었는데 枡本航太는 기타와 노래를 했고 쿠로다씨는 첼로를 연주했다. 목소리와 분위기가 약간 최민수같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마이크 앰프가 고장나서 앰프없이 노래를 했다. 마이크가 없으니 여기 처다보고 저기 처다보고 해도 되서 자유롭고 편했다. 별 거 없이 재밌게 공연을 끝냈다. 마지막은 도쿄에서 온 오슈라는 사람인데 깁슨 J-45를 들고 나와 세련된 포크와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했다. 7살 까지 상하이에 살다가 가족여행 가는지 알고 일본에 왔었는데 그 뒤로 계속 일본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도쿄에서 애인과 같이 살고 있다는 그는 공연이 끝나고 나선 술에 취해 공연하기가 싫다는 얘기도 나에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고 이런저런얘기를 하다보니 밤이 깊었고 쿠로다씨는 술한잔 더하고 자고가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라이브클럽이 교토에 있다면서 거기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유스라고를 나와서 우리는 좁은 밤길을 십분정도 걸었다. 전혀 라이브 클럽이 있을거 같지 않는 장소에 하얀색의 오래된 건물이 보였는데 여기가 40년된 공연장 지토쿠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안에 들어가니 뭐 화려한것도 없고 공연장 같지 않게 신발을 벗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고 약간 우리나라 막걸리 집같은 분위기였다. 자리를 잡고 술과 안주를 시켰다. 신기하게도 메뉴판에는 공연일정표도 있었는데 한달에 한 삼일을 빼고는 공연이 빽빽하게 잡혀있었다. 모두 일본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이와모리라는 독한 술을 한 컵마시고 즐겁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카페로 돌아가서 잘줄 알았는데 다시 차를 마셨다. 어디 멀리서 온 카페인이 없는 차라면서 마시고 또 마시고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고 그러다 밤 늦게 잠이 들었다. 오슈도 거기서 자고 아침일찍 신칸센을 타러 나갔다. 나도 오전에 일어나서 오사카로 향했다. 쿠로다와 미도리코는 문밖에까지 배웅을 해줬다.

판매

생각만큼 씨디가 많이 팔리진 않았다. 그래서 올 때 짐만 되었다. 관객수를 잘못 예상했던것 같다. 가사집의 경우도 내 예상은 공연전에 미리 가사집을 살거라는 거였는데 완전 빗나갔고 전부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씨디나 가사집을 사갔다. 다음에 다시 일본에 온다면 가사집을 더 싸게 만들어서 공연하기 전에 무료로 나눠주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많지는 않았지만 몇명은 공연 후 수줍게 관심을 보이면서 씨디를 사갔고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는것

오사카에 온 첫날 이마자토 킨테츠역에 도착하니 친구가 역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삼년도 넘어서 봤지만 그는 여전해 보였고 별로 어색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집에가서 이런저런얘기를 하다가 일본공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일본공연가는데 자기 돈으로 혼자 와서 돌아다니는게 이해가 안되는것 같았다. '그기 무슨 칸사이투어고'이 말을 내가 있는 동안에도 몇번씩 하곤했다. 그래 옆에서 누가 챙겨주고 공연장도 찾아주고 하면 쉬웠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경마장의 말처럼 투자의 대상이 되느니 피곤해도 스스로 해나가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음악얘기보다 사는 얘기를 더 많이 했던것 같다. 오사카에서 같이 공연했던 나호코씨는 교토 대학에서 회계업무를 하고있다고 말했다. 오사카에 있는 내 친구는 부산에서 음악하던 놈인데 요즘은 바빠서 음악을 못한다고 했다. 드럼페달이 그렇게 갖고 싶어서 하나 샀는데 지금은 쓸데가 없다고 했다. 난 나중에 자리잡히면 할 수 있을거라고 얘기해줬다. 그의 동생은 편의점에서 일을하고 있었는데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것 같았다. 어느날 저녁에 집에 돌아오더니 '형님 그 시내 육교에 사람들 공연하는데 가봤어요? 나는 음악할 줄 알면 길거리에서 그런 거도 하고 싶든데, 거기가면 인기있는사람은 육교 한가운데서 보는사람 많은사람앞에서 하고요, 흐흐 인기없는 사람은요 육교 계단 한 구석에서 마이크도 없이 노트만 하나펴놓고 해요. 그거 누가 보겠어요. 나같아도 안보겠어요'라고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내가 가면 딱 육교 계단에서 그사람같이 할거 같다고 대답을 했다. 어느 날 아침 두 형제가 밤새 고된일을 마치고 돌아와 미친듯이 자는 걸 보았다. 동생은 일본말로 잠꼬대를 하면서 거스름돈 얘기를 했다. 교토의 찻집 유스라고의 주인인 쿠로다씨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유스라고의 사장이자 종업원이며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씨디를 사주었던 얼굴이 길쭉하고 안경을 쓴 사람에게도 물었다. 내일(월요일)에 일하러 가야겠네요? 그러니 그는 얼마전에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의 맥주를 뺏아 마셨다. 오슈는 도쿄에서 두개의 파트타임 일을 한다고 했다. 레스토랑 같은데서 서빙을 한단다. 그는 나에게도 물었다. 한국에서 무슨일을 하냐고. 그래서 난 음악만 한다고 얘기했다. 괜히 부끄러웠다.

공연 후 남은것들

마지막 날 오사카의 친구집에서 오전 11시쯤 출발해서 칸사이공항-인천공항-서울역-부산역을 거쳐 집에오니 밤 12시가 다되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마치 한달쯤 집을 비웠던것 처럼 느껴졌다. 다급하게 집을 빠져나온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짐을 풀어 옷과 양말 속옷등을 세탁기에 집어 넣고 보니 씨디 몇장이 남았다. 고베에 갔을 때 마루오씨가 선물이라고 줬던 자기의 씨디 'Maruo Maruko-mawarimawaru kyuutaino ue' 를 틀어 놓고 나머지 씨디를 보았다. 교토에서 만난 오슈의 씨디 두장도 있었다. 그는 내 씨디를 보더니 자기 씨디 두장과 바꾸자고 해서 바꿨는데 나중에 자기 씨디가격을 보여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내 씨디는 천오백엔이었는데 그의 씨디는 두장에 천엔에 팔았기 때문이었던거 같다. 그리고 공연후 나가에라는 사람이 내 씨디를 사며 자기도 음악하는데 한국에도 자주가봤다면서 준 데모씨디도 있었다. 교토에서 오사카로 가던날 후쿠다씨가 들어보라고 준 샘 무어의 복사본도 있었다. 그 외에 여기저기서 가져온 찌라시들, 명함이 가방에 구겨져 있었다. 그리고 수첩과 수첩속의 일기와 수첩속에 적어 놓은 사람들의 이메일주소 뭐 그 정도가 남은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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