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0일 화요일

재미공작소, <가축병원블루스>를 발표한 김태춘을 만나다.

재미공작소 가축병원블루스를 발표한 김태춘을 만나다 인터뷰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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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공작소 가축병원블루스를 발표한 김태춘을 만나다 인터뷰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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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춘 2013/3/15~3/17 일본 칸사이 투어기

김태춘 2013/3/15~3/17 일본 칸사이 투어기


투어의 배경

일본에 공연 간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첫 반응은 거의 ‘이야, 잘나가네, 좋겠다’이런 거였다. 하지만 막상 그 땐 별로 일본 공연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음... 아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투어를 계획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글쎄. 처음에 나에게 제안한 사람은 같은 레이블에서 활동하는 드린지 오였다. 드린지 오는 레이블안에서는 일본공연의 전문가인 듯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공연도 자주가고 하면서 공연의 요령을 터득한 사람인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1월 즘인가 일본 저가항공으로 가면 싸다는 말에 ‘그냥 함 가보까 별로 할 일도 없는데’ 하고 일본공연을 결정하게 되었다. 결정하고 나니 드린지 오가 순식간에 오사카, 고베, 교토의 공연일정을 잡아 주었다. 일정이 잡힌 후 곧나올 앨범을 준비하느라 1월과 2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2월말이 되어서야 3월초에 일본 공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공연 준비

공연이란건 음악의 연주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노래의 뜻을 모른다면 그 노래를 반도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일본어 가사집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 일본어 가사집을 만들어서 갔더니 호응이 좋았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급하게 일본어를 전공한 친구한테 번역을 맡기고 혹시나 해서 한국말을 존나 잘하는 일본인 친구에게 교정을 맡겼다. 번역이 완료된 후에는 몇 개의 가사집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그린그림이라는 곳에 제작을 맡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일본공연을 기획하기 이전에 개들의 세상이란 노래를 번역한 이누노세카이(犬の世界)라는 곡이 있었다. 그 곡을 바꿀때는 그냥 막연히 언젠가 일본공연을 갈거라 고 생각만 했었는데 어쨌든 일정이 잡혔으니 잘 쓸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것들을 준비하고 앨범 쇼케이스나 다른 공연준비를 하다 보니 일정이 너무 빡빡했고 결국 간단한 회화조차 익히지 않고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비

일본에 가기전에 어떤 악기를 들고 가야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어쿠스틱기타를 꺼야할지 일렉기타를 써야 할 지, 케이스도 하드케이스도 써야하고. 결국엔 내가 자주 사용하는 일렉기타를 쓰기로 하고 통기타 하드케이스를 들고 가기로 했다. 공연하는 곳이 어떤 음향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프리앰프페달과 딜레이페달,기타케이블 등을 챙겼다. 그리고 여분의 피크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카주, 카주홀더도 빠짐없이 챙겼다. 이런것들과 옷, 공연장에서 팔 씨디,가사집,스티커까지 챙기니 어깨가 부서질거 같았다.


일본으로 가는 길

일본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피곤했다. 저가항공사가 인천에서만 왔다갔다하는 까닭에 난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와 다시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는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유있게 도착하여 표를 끊고 짐도 부쳤다. 5일 동안 일본에서 쓸 데이터도 로밍을 했다. 입국수속을 위해서 공항검색대를 향해 긴 행렬 속에 나도 끼여들었다. 입구에는 엑스레이촬영에 대해 한껏 변명을 이쁘지도 않게 지루하게 설명해 놓은 게시물과 함께 엑스레이를 통과한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 공항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속사진을 저렇게 찍는다고 하니 참 기분이 묘했다. 자기 뼈모양을 감추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아나. 한쪽 벽면으로는 한 5개 국어로 안녕히가십시오란 말이 적혀있었다. 검색대는 다소 삼엄해보였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 검색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는 알수 없는 근심과 걱정과 불안이 생긴다. 뭐 잘못한것도 없는데 뭔가 울릴거 같은 느낌. 무사히 검색대를 지나자 요란한 면세점들이 보였다. 저가항공이라서 그런지 탑승게이트도 동떨어져 있었다. 게이트 주변에 짐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니 평평한 회색 콘크리트 위로 비행기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문득 출국수속을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떠올랐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본말도 들리고 서울말도 들리고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비행기에 오르고 이륙하는 순간 난 잠이 들었다. 옆에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던사람도 파란하늘 구름 아래 펼쳐진 바다도 복숭아빛 유니폼을 입은 여자 승무원의 얼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칸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길고 하얗고 재미없는 통로를 지나 입국수속을 마쳤다. 세관원이 내 기타케이스를 보더니 어쿠스틱기타냐고  묻길래 나는 일렉트릭기타라고 얘기를 했다. 가방을 열어 볼까 불안했다.특별한건 없고 그냥 기타케이스에 들어있던 소주 네병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별일 없이 수속을 다 마쳤다.

이동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사카,교토,고베의 교통 시스템은 복잡했다. 요금도 구간단위가 아니고 역단위로 달라져서 표 끊기도 힘들고 한국에 비해서 비싸기도 했다. 게다가 환승하는것도 목적지에 다르고 열차역도 열차를 운영하는 회사에 따라서 다르게 되어 있었다.  물론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에겐 문제가 없겠지만 이곳이 처음인 나에게는 이동하는게 가장 큰 일이었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탈때는 항상 긴장해야 했다. 그 외에 가장 중요한 이동 수단은 걷는 것이다. 역에 내린 후에는 목적지 까지 제법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이때는 아이폰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주변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지도를 이용하는 건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아껴준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처음 목적지는 친구가 사는 이마자토(今里)였다. 공항에서 거의 2시간이 걸려서야 허름한 이마자토역에 도착할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출발을 좀 늦게해서 열차를 이리저리 갈아타서 공항까지 아슬아슬하게 도착을 하기도 했다.

제1회공연(오사카 2013/03/15)

칸사이투어의 첫번째 공연은 오사카에서 였다. 일단 리허설이 6시여서 그 전까지 시내중심가를 돌아다녔다. 공연장은 오사카 니트 카이칸이라는 곳이었는데 신사이바시에서 걸어서 한 삼사십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나중에 도착해서야 한자를 보니 카이칸이 '회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좀 일찍 도착해서 아직 문이 잠겨 있었다. 여섯시가 넘으니 어떤 여자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 공연을 주최한 이노우에씨였다. 경음악실이라거 표시된 그곳은 공연장이라기 보다는 기타앰프 몇대와 키보드 몇 대가 있는 창고같은 곳이었다. 말이 안통하니까 이노우에씨와 나는 구글 번역기를 서로에게 보여 주면서 대화를 했다. 가져온 씨디와 가사집을 한쪽 테이블에 가져다 놓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시간이 다되어 가도 관객이나 같이 공연하기로 한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노우에씨는 오늘 다른 공연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올까 걱정이라고 얘기 하길래 나는 오늘 관객이 아무도 안오면 맥주나 마시자고 얘기 했다. 진심으로 나는 공연보다 맥주마시고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공연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와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정확히 일곱명이었다. 그 중에는 그날 특별히 어머니와 같이 온 사람도 있었다. 첫 순서는 나호코 카메이라는 키보드 연주자였다. 키보드와 디지털 딜레이를 자유롭게 이용해 때때로 극단적인 사운드를 만들어서 자기 느낌을 표현했다. 곡마다 설명을 하는데 난 당연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관객들은 멘트가 끝날때마다 '아~'하며 공감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녹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연주를 마치고 나를 소개 했다. 난 인사를 하고 악기를 챙겨 자리에 앉았다. 일본어 멘트를 적은 수첩도 같이 챙겨서 곡 중간마다 간단한 설명을 했다. 그때마다 관객의 반응은 웃음이나 '에-'였는데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다. 공연은 평소대로 문제없이 했다. 생각치 못한 앵콜이 나와서 앵콜곡에 대한 노래를 영어로 설명하는데 잘 이해못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관객 한분이 모두에게 일본어로 설명해 주니 다들 알아들은 듯했다.내 공연까지 모두 끝났고 이노우에씨는 캔맥주를 꺼내서 나에게 주었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모여서 얘기하거나 같이 공연한 나오코씨와 뭔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일본말을 못하니까 아까 멘트를 도와준 그 분과 간간이 영어로 얘기를 나눴다. 그 분은 자기 베스트 프렌드가 부산에 있는데 혹시 김순이(가명)를 아는지 물어봤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밤이 깊어 모두 돌아가고 정리를 마친 뒤 이노우에씨 등 몇명과 지하철 막차를 타고 헤어졌다. 나는 다른 역에 잘못 내렸고 그 땐 지하철이 끊긴 터라 한시간 반정도 친구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도착했을땐 친구와 친구 동생은 모두 일을 하러 나간 뒤였고 혼자 맥주 두캔을 먹고 잤다.

제2회공연(고베 2013/03/16)

이 날은 친구가 쉬는 날이라서 같이 고베까지 왔다. 리허설이 4시30분까지여서 집에서 일찍나와 몇번의 전철을 갈아타고 고베의 스페이스 에아우(space eauuu)에 쉽게 도착을 했다. 2층에는 재즈레코드바가 있었고 3층이 스페이스 에아우였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느낌은 공연장이라기 보단 세련된 아트 카페의 느낌이었다. 머리를 빡빡깍은 청년이 '키무상?'이러길래 '와타시와김태춘데스'라고 대답하고 한국에서 산 참이슬을 건넸다. 나머지 얘기들은 친구가 일본말로 내 대신 해주었다. 거기에는 작지만 아주 신기한 음향장비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팔각형으로 된 나무스피커였다. 그 여덟개의 면마다 8개의 스피커가 달려있었는데 신기하게 좋은 소리를 냈다. 거기는 따로 기타앰프가 없어서 DI박스에 기타를 바로 연결해서 리허설을 마쳤다. 나가서 근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오니 다른사람들의 리허설이 다 끝난 상태였다. 앉아서 맥주를 한병 마시며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다. 첫순서는 地底紳士(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사람인데 여자 란제리를 입고 클래식 기타를 치며 미성의 목소리를 냈다. 나중에 친구한테 노래가 무슨내용이냐고 물어보니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뭐 이런 내용이라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할 때 왜 여자옷 입고 하냐고 물으니까 '왜냐면 나는 地底紳士니까'라고 설명 해주었다. 두번째는 2o2라는 사람인데 특이 하게도 리켄베커 랩스틸기타를 연주했다. 랩스틸기타를 루프머신과 각종 이펙터에 연결해 랩스틸 기타를 두드린다거나 줄을 긁거나 하여 만들어진 반복적인 리듬위에 연주를 입히는 식이었다. 보다가 나는 밖으로 나가 잘 피지도 않는 담배를 한대 폈다. '내가 지금 말도 안통하는 여기서 뭐하러 왔지? 관객 다섯명 앞에서 공연할라고 이 멀리까지 왔나? 그라고 자들은 도대체 뭐하는 아들이고?'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어떤걸 한다는건 불안 만큼이나 기대도 주는 것 같다. 나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에 세계를 내가 상상하는 그림들로 채워 놓고는 생각치 못한 현실 앞에서 당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니 마음이 편안했다. 꽁초를 하수구에 버리고 다시 space eauuu로 올라가서 맥주를 마셨다. 마루오 마루코라는 사람이 시작했다. 아까 내 리허설이 끝나고 나갈때 그 사람을 마주쳤을 땐 평범한 아줌마인거 같았는데 쥬스하프(jew's harp)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솜씨를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거 같았다. 노래 내용은 전혀 알수없었지만 음악은 멜로디라인이 강하고 일본적으로 느껴졌다. 뭐라고 설명 할수는 없지만 아코디언 연주소리는 듣기 좋았고 감미로우면서도 박력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악마와 나'부터 시작을 했다. 마음 편하고 재밌게 노래했다. 너무 마음이 편해서 였는지 개들의 세상은 가사를 놓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같이 공연했던 사람들과 음악과 음악외적인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코디언을 연주했던 마루오씨는 알고보니 꽤 많은 악기를 다룰줄 알았는데 현재 컨트리밴드에서 아코디언을 치고있다고 했다. 다음에 같이 공연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자기도 좋다고 말은 했다. 기차를 타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왔다.

제3회공연(교토 2013/03/17)

이 날은 리허설이 오후 한시부터였다. 그 전날 잠들기 전엔 너무 피곤해서 고마 리허설 안할란다 마음먹었으나 또 아침이 오니 빨리 챙겨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토까지 가는 길은 고베보다 더 멀고 복잡했다. 기차를 4번 갈아타고 약 30분을 걸어서 가야했다.  3년전에도 와본적이 있었지만 이런느낌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같은 대도시에 있다가 교토에 도착하니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도시가 주는 느낌이 좀 달랐다. 공연장을 찾아 걷는 동안에도 오래된 목조건축물들이 눈에 자주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카페 유스라고는 일반 가정집 중간에 있었다. 나중에 그 주인이 100년된 집을 카페로 바꿨다고 말해줬다. 도착하니까 문이 닫혀 있어서 너무 일찍왔나 싶었는데 어떤 남자가 창문을 열드마 부시시한 차림으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들어가보니 어두컴컴한 다다미 방으로 되어있었다. 키도 훤칠하고 인상좋아 보이는 그 남자는 자신을 쿠로다라고 소개했다. 좀 있으니 다른 여자분을 소개 하면서 녹색(미도리)을 좋아해서 닉네임이 미도리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가게는 구석구석이 녹색으로 가득 차있었다. 방석에서 부터 커튼 컵, 멀티탭까지 녹색으로 가득차 있었다. 쿠로다씨는 녹색에 미친여자라고 설명도 해줬다. 선물로 참이슬소주를 줬는데 그 병이 녹색이라서 너무 좋아했고 전자사전을 가져와 한국말로 뭔가를 계속 설명하고 싶어했다. 앉아서 차를 마시는 동안 쿠로다씨가 트는 블루스 음악이나 포크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리허설을 마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순서는 枡本航太와 쿠로다씨의 공연이었는데 枡本航太는 기타와 노래를 했고 쿠로다씨는 첼로를 연주했다. 목소리와 분위기가 약간 최민수같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마이크 앰프가 고장나서 앰프없이 노래를 했다. 마이크가 없으니 여기 처다보고 저기 처다보고 해도 되서 자유롭고 편했다. 별 거 없이 재밌게 공연을 끝냈다. 마지막은 도쿄에서 온 오슈라는 사람인데 깁슨 J-45를 들고 나와 세련된 포크와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했다. 7살 까지 상하이에 살다가 가족여행 가는지 알고 일본에 왔었는데 그 뒤로 계속 일본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도쿄에서 애인과 같이 살고 있다는 그는 공연이 끝나고 나선 술에 취해 공연하기가 싫다는 얘기도 나에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고 이런저런얘기를 하다보니 밤이 깊었고 쿠로다씨는 술한잔 더하고 자고가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라이브클럽이 교토에 있다면서 거기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유스라고를 나와서 우리는 좁은 밤길을 십분정도 걸었다. 전혀 라이브 클럽이 있을거 같지 않는 장소에 하얀색의 오래된 건물이 보였는데 여기가 40년된 공연장 지토쿠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안에 들어가니 뭐 화려한것도 없고 공연장 같지 않게 신발을 벗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고 약간 우리나라 막걸리 집같은 분위기였다. 자리를 잡고 술과 안주를 시켰다. 신기하게도 메뉴판에는 공연일정표도 있었는데 한달에 한 삼일을 빼고는 공연이 빽빽하게 잡혀있었다. 모두 일본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이와모리라는 독한 술을 한 컵마시고 즐겁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카페로 돌아가서 잘줄 알았는데 다시 차를 마셨다. 어디 멀리서 온 카페인이 없는 차라면서 마시고 또 마시고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고 그러다 밤 늦게 잠이 들었다. 오슈도 거기서 자고 아침일찍 신칸센을 타러 나갔다. 나도 오전에 일어나서 오사카로 향했다. 쿠로다와 미도리코는 문밖에까지 배웅을 해줬다.

판매

생각만큼 씨디가 많이 팔리진 않았다. 그래서 올 때 짐만 되었다. 관객수를 잘못 예상했던것 같다. 가사집의 경우도 내 예상은 공연전에 미리 가사집을 살거라는 거였는데 완전 빗나갔고 전부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씨디나 가사집을 사갔다. 다음에 다시 일본에 온다면 가사집을 더 싸게 만들어서 공연하기 전에 무료로 나눠주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많지는 않았지만 몇명은 공연 후 수줍게 관심을 보이면서 씨디를 사갔고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는것

오사카에 온 첫날 이마자토 킨테츠역에 도착하니 친구가 역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삼년도 넘어서 봤지만 그는 여전해 보였고 별로 어색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집에가서 이런저런얘기를 하다가 일본공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일본공연가는데 자기 돈으로 혼자 와서 돌아다니는게 이해가 안되는것 같았다. '그기 무슨 칸사이투어고'이 말을 내가 있는 동안에도 몇번씩 하곤했다. 그래 옆에서 누가 챙겨주고 공연장도 찾아주고 하면 쉬웠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경마장의 말처럼 투자의 대상이 되느니 피곤해도 스스로 해나가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음악얘기보다 사는 얘기를 더 많이 했던것 같다. 오사카에서 같이 공연했던 나호코씨는 교토 대학에서 회계업무를 하고있다고 말했다. 오사카에 있는 내 친구는 부산에서 음악하던 놈인데 요즘은 바빠서 음악을 못한다고 했다. 드럼페달이 그렇게 갖고 싶어서 하나 샀는데 지금은 쓸데가 없다고 했다. 난 나중에 자리잡히면 할 수 있을거라고 얘기해줬다. 그의 동생은 편의점에서 일을하고 있었는데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것 같았다. 어느날 저녁에 집에 돌아오더니 '형님 그 시내 육교에 사람들 공연하는데 가봤어요? 나는 음악할 줄 알면 길거리에서 그런 거도 하고 싶든데, 거기가면 인기있는사람은 육교 한가운데서 보는사람 많은사람앞에서 하고요, 흐흐 인기없는 사람은요 육교 계단 한 구석에서 마이크도 없이 노트만 하나펴놓고 해요. 그거 누가 보겠어요. 나같아도 안보겠어요'라고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내가 가면 딱 육교 계단에서 그사람같이 할거 같다고 대답을 했다. 어느 날 아침 두 형제가 밤새 고된일을 마치고 돌아와 미친듯이 자는 걸 보았다. 동생은 일본말로 잠꼬대를 하면서 거스름돈 얘기를 했다. 교토의 찻집 유스라고의 주인인 쿠로다씨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유스라고의 사장이자 종업원이며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씨디를 사주었던 얼굴이 길쭉하고 안경을 쓴 사람에게도 물었다. 내일(월요일)에 일하러 가야겠네요? 그러니 그는 얼마전에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의 맥주를 뺏아 마셨다. 오슈는 도쿄에서 두개의 파트타임 일을 한다고 했다. 레스토랑 같은데서 서빙을 한단다. 그는 나에게도 물었다. 한국에서 무슨일을 하냐고. 그래서 난 음악만 한다고 얘기했다. 괜히 부끄러웠다.

공연 후 남은것들

마지막 날 오사카의 친구집에서 오전 11시쯤 출발해서 칸사이공항-인천공항-서울역-부산역을 거쳐 집에오니 밤 12시가 다되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마치 한달쯤 집을 비웠던것 처럼 느껴졌다. 다급하게 집을 빠져나온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짐을 풀어 옷과 양말 속옷등을 세탁기에 집어 넣고 보니 씨디 몇장이 남았다. 고베에 갔을 때 마루오씨가 선물이라고 줬던 자기의 씨디 'Maruo Maruko-mawarimawaru kyuutaino ue' 를 틀어 놓고 나머지 씨디를 보았다. 교토에서 만난 오슈의 씨디 두장도 있었다. 그는 내 씨디를 보더니 자기 씨디 두장과 바꾸자고 해서 바꿨는데 나중에 자기 씨디가격을 보여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내 씨디는 천오백엔이었는데 그의 씨디는 두장에 천엔에 팔았기 때문이었던거 같다. 그리고 공연후 나가에라는 사람이 내 씨디를 사며 자기도 음악하는데 한국에도 자주가봤다면서 준 데모씨디도 있었다. 교토에서 오사카로 가던날 후쿠다씨가 들어보라고 준 샘 무어의 복사본도 있었다. 그 외에 여기저기서 가져온 찌라시들, 명함이 가방에 구겨져 있었다. 그리고 수첩과 수첩속의 일기와 수첩속에 적어 놓은 사람들의 이메일주소 뭐 그 정도가 남은거 같다.

김태춘 가축병원블루스작업기

가축병원블루스작업기

1.앨범의 배경

사실 가축병원블루스라는 앨범은 제대로 짜여진 앨범이 아니다.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곡을 쓰고 또 녹음을 하고. 그래서 앞으로 이어질 얘기들은 음반작업기라기 보다는 한 음악가가 자기 음반을 스스로 만들기 위한 발악의 기록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처음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땐 나는 그냥 내 짧다고 볼 수 없는 나의 음악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나의 앨범으로 정리를 한다면 뭔가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을것 같은 느낌. 그게 새로운 음악이든 새로운 삶이든 새로운 무엇이든지 간에. 사실 몇년동안 음악에 대해 진척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음악을 그만둬야되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밴드로 활동 하던 일요일의 패배자들 시절 부터 뭔가 되는게 없다는 느낌이 있었다. 뭔가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은 많았지만 사실 제대로 된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잘못된 길로 가다보니 자꾸 실패만 했고 결국엔 음악이 하기 싫어졌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 공연하고 만취해 집에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평일에 다시 시작되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의 연속이었고. 아무튼 결론적으로 몇년간 나의 음악활동을 정리하고 싶었다.
음반작업을 시작한 건 일요일의패배자들 시절부터 였다. 2011년 겨울부터 녹음이 시작되었다. 컨셉도 아무 주제도 없었다. 그냥 일단 우리가 연주하던대로 최대한 단순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리던 사운드는 들릴듯말듯 하는 드럼,베이스소리와 멍멍한 보컬에 땡땡거리는 기타소리를 넣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은 드럼부터 베이스 리듬기타 랩스틸기타 보컬순으로 녹음할 계획이었다. 드럼 녹음 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밴드에 벌써 몇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특히 드럼은 더 자주 바뀌게 되서 밴드를 시작할 때 처음 드러머가 공연 있을 때만 잠깐 와서 연주해주는 식이었다. 그는 다른지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연습도 힘들고 녹음은 더 힘들었다. 일단 몇곡정도만 드럼 녹음을 해놓고 다음 녹음을 앞둔 상태에서 밴드를 접게 되었다. 그래서 밴드 녹음의 계획도 그냥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다음해 겨울부터 혼자 일렉기타를 들고 다니며 수줍은 공연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봄이 왔고 김일두행님이 김대중이라고 목소리가 머디 워터스같은 사람이 있다고 부산에 내려오면 공연을 함 하자는 얘기를 했고 봄에 처음 삼김시대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잡혔다. 부산에서 삼김시대 공연을 계기로 솔로활동에 대한 의욕도 높아졌고 밴드를 그만두고 만든 노래도 몇곡이 더 생겨서 데모앨범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솔로로 녹음을 해야되겠단 생각을했다.

2.작업의 시작

녹음을 해야되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아직 어떤 식으로 녹음해야될지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지루한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밴드 컨셉으로도 몇곡 연습녹음을 해보고 어쿠스틱기타 솔로로도 해보고 일렉트릭기타와 보컬의 조합으로도 해보았다. 그러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평일에 늦게 일을 마치고 하는 작업도 한계가 있었다. 주말에는 또 아무 방해 안받고 쉬고싶어서 녹음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것 저것 해볼 수록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지금 맞게 하는건지 어떤 조합이 괜찮은 조합인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 졌다. 노래,연주,녹음,편집까지 다 할라니까 다시 심신이 지쳐가고있었다. 한참을 그러던중에 결국 밴드컨셉은 포기하고 어쿠스틱기타+보컬 컨셉으로 가기로 했다. 사운드가 좀 허전해도 일단 데모앨범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정식으로 해보자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곡들을 하나하나씩 어쿠스틱솔로곡들로 편곡을 했다. 기타만으로 사운드가 부족한 곡들은 카쥬를 넣어서 좀 채우기로 했다. 곡을 정리하다가 문득 앨범제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업하기로 생각했던 곡들이 구체적인 하나의 주제에 의해 만들어진 곡들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대부분의 노래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대부분 40~50년대 미국에서 유했했던 컨트리와 힐빌리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내용적으로는 승리자와 패배자의 대결 혹은 묘사와 승리자(혹은 메이저리티)에 대한 조롱과 패배자(마이너리티)에 대한 동정 및 항변이었다. 그런 공통적인 특징들을 가장 잘 나타내 줄 타이틀 곡을 찾았고 그게 가축병원블루스였다. 그래서 가축병원블루스에는 패배자들에 대한 애잔함을 표현하기 위해 톱이나 죠스하프(jaw's harp)의 구성을 넣었다. 일곱곡에 연주곡 한곡을 더해서 총 여덟곡을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3.녹음

녹음장소는 내가 일하는 곳의 녹음실이었다. 평일 저녁 9시에 일이 끝나면 그때부터 내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업실은 콘솔룸과 녹음실로 분리가 되어 있었지만 난 혼자서 녹음을 진행해야되는 까닭에 방음이 잘안되는 콘솔룸에서 녹음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당연히 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라든가 방에서 생기는 울림들이 같이 녹음 될수 밖에 없었다. 작업의 준비는 간단했다. 콘덴서 마이크 두개를 2채널 짜리 프리엠프에 물리고 하나는 보컬에 하나는 기타쪽에 놓으면 되었다. 처음 세팅할 때는 보컬트랙에 기타소리가 너무크고 기타트랙에 보컬이 너무 크게 잡혀서 이렇게 저렇게 세팅을 바꿔보았지만 그냥 포기하고 가기로 했다. 어떤곡은 순식간에 끝나기도 하고 어떤 곡은 며칠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곡의 녹음이 약 한달만에 끝이 났다. 녹음이 끝나서 홀가분 했지만 믹싱을 하려고 할 때 녹음한 곡들의 문제가 너무 크게 보였다. 일주일 동안 믹싱을 해보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이건 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준비하던 블루스 더 블루스 앨범에 넣을 곡을 녹음해야만 했다. 녹음,편집,마스터링까지 일주일만에 다 끝났다. 그리고 또 일상생활에 묻혀있다보니 겨울이 바로 앞에 있었다. 어쨌든 그 해에 뭔가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들지만 포기했던 트랙들을 다시 로드했다. 내가 막 녹음을 끝냈던 당시는 내가 지쳐있었던건지 내 귀가 지쳐있었던건지 못쓰겠다 생각한 트랙들이 다시 들어보니 각각 나름대로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충 믹싱과 마스터링을 해서 씨디로 구웠다.

4.그외의 작업

음반 자켓에 대한 고민도 만만치 않았다. 돈은 존나 적게들이면서 인상깊게 하는게 어디 쉬운일은 당연히 아니니까. 혼자서 포토샵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안되서 만화그리는 후배한테 부탁도 해보고 하다가 결국 한글2004를 이용해 만들기로 했다. 아무리 해도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그럴바엔 괜히 멋부리지 말고 내가 할수있는 만큼만 하자 싶었다. 뭔가 허접한 사운드와 매치되는 어떤게 필요했다. 타이틀이 가축병원블루스니까 병원마크를 넣으면 되겠다 생각을 했다. 그리고 뒷장엔 가사를 넣었다. 그리고 예전에 미국에서 몇 인치인지는 모르겠는데 작은사이즈의 LP판을 신문지나 종이에 싸서 팔았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집에 굴러다니는 종이에 직접구운 씨디를 대충싸서 고무줄로 가사집을 끼워넣어서 자켓을 완성했다.

5.판매

음반이 팔린 다는 건 음악가에게 최고의 일인 것 같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인정해 준다는 뿌듯함 뿐만 아니라 바로 내 손에 쥘수 있는 돈을 주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나는 음반 제작비가 거의 들지 않았으니 더욱 기뻤다. 음반 판매는 주로 공연장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밖엔 우편판매나 서울이나 부산의 카페나 공연장에 진열해서 판매를 부탁했다. 약 250장을 제작했고 모두가 팔린 뒤에는 다시 만들지 않았다.

6.정식발매음반작업

그 와중에 나는 일렉트릭 뮤즈의 소속 음악가가 되길 원했고 거기서도 받아준다고 해서 기뻤다. 그리고 얼마 안있다가 정식으로 음반발매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추가로 자체제작 해서 또 똑같은 식으로 팔 수도 있었지만 한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행스럽게 레이블에서도 몇곡을 더해서 정식발매를 하자고 했다. 일단 음반제작에 대한 일정을 잡고 어떤 곡을 추가로 넣을건지 연습녹음을 해서 들어본 후에 프로듀서와 함께 녹음계획을 세웠다. 녹음은 서울의 석기시대라는 녹음실에서 진행되었는데 낮선 곳이라서 그런지 뭔가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마음도 조급해졌다. 당시에는 일단 빨리 끝내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거 같다. 프로듀서의 괜찮은거 같다는 말에 나도 그냥 오케이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내려와서 듣고 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정이나 연주는 둘째치고라도 노래들이 맥이 없이 느껴졌다. 내가 과민한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후에 완성되어서 그 곡들을 들을 때마다 아쉬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산과 창원의 몇군데서 녹음을 해보던 중 내가 작업하던 곳에서 다시 녹음을 시도했다. 개들의 세상이라는 노래에서 김목인행님이 쳐준 피아노를 살려서 기타와 보컬 부분만 다시 녹음을 했다. 녹음은 빨리 끝났다. 프로듀서에게 메일로 곡을 보내고 괜찮다는 답을 얻었다. '역시 하던데서 하니까 잘되네요'라고 하니까 프로듀서는 '프로는 아무데서나 잘해야지'라고 했다. 나는 '내가 프로는 아인갑네요'라는 대답을 했던거 같다.
대량으로 프레스하기에는 기존의 핸드메이드 커버를 쓸수가 없었다. 그래서 레이블에서 고민이라는 디자인그룹에 의뢰를 했고 기존에 쓰던 병원마크디자인을 살려서 약간 산뜻하게 꾸며서 커버도 완성했다.

7.수록곡에 대해

악마와나- 가끔은 세상에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걸 보면 화가난다. 아름답지도 않은 허접한 조명들이 달빛과 별빛을 다 가리는 것처럼. 그런 모든게 무너져서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곡이다.

개들의 세상- 우리가 쓰레기 가득한 질퍽한 땅 위에서 서로 비난하고 배신을하고 계략을 짜고 물어뜯는 동안 구름 위에서 누군가는 베팅을 하고 웃으면서 지켜볼지도 모른다.
지옥에서온편지- 천국을 믿지 않았지만 지옥의 무서움을 깨닫고 하나님을 숭배하는 한 남자에 대한 노래이다. 종교적인 믿음이란건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공갈협박을 통해 생긴다.

가축병원블루스- 어릴 때부터 같이 음악을 하던 행님이 있었다. 매서운 눈을 가진 그 행님은 야심찬 사람이었는데 음악이 잘 되지 않았고 어시장과 공장, 조선소를 전전긍긍했는데 내 머리속엔 항상 그 행님의 술취한 모습과 뭔가에 좌절한 모습이 가득했다. 그러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옆에 있는 허름한 가축병원을 지나치는데 그 행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평생 소같이 농사일만 짓다고 병원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얼굴도 떠올랐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건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니까.

내 사랑은 롯데캐슬위에- 세상에 성공한 사람들 보면 미남인데다가 성격도 쿨하다. 결정적으로 싸움도 잘하며 사람도 잘 깔본다는 점이다. 암컷이 우수한 수컷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것이지만 그로 인해 사랑을 뺏겨서 슬픈것도 당연하다. 사랑은 돈으로 살수 없어도 사람은 살수 있다.

김태춘과춤추기엔(얼마남지 않았네)- 자주 버릇처럼 연주하던 멜로디에 '작별의 노래'의 멜로디를 섞어 보았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B급

B급을 좋아하는건 엘리트들이다- 스트레인지 푸룻 앞에서의 대화를 떠올리다가

믿음

믿음에서 나오는 힘과 예수,알라,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서 생각한다.-루츠락레게 vol.2에서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상상

상상은 원래 존나 재밌는것인데 머리속에 든것보다 눈앞에 있는일들에만 신경쓰다보면 그 재미를 잘 볼수가 없다. 이젠 딸딸이도 야동이 없으면 못치게 될수도 있긋다. - 법정스님의 책을 읽다가

역할

사람이 역할을 만드는 걸까 역할이 사람을 만드는걸까 -용의 눈물 43회를 보던 중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양반

이모집은 황토집앞에 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거기에 도착했을때 민호와 훈무가 안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다른 일행이 도착했고 우리는 둥그런 탁자에서 소주를 마셨다. 나의 옛직장 동료들도 와있어서 좀 껄끄럽기도 했다.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나는 용의눈물을 보고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1차왕자의 난,2차왕자의 난, 권력투쟁에 대한얘기, 사학과에 대한 얘기, 문반무반에 양반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민호가
'양반은 어떻게 양반이 되는데?'
라고 물었다. 그러게. 도대체 언제부터 양반은 양반이고 상놈은 상놈이었나. 왕조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신분을 나누지는 않았을거 아이가. 용의 눈물에서 새끼꼬는 할배가 이런말을 한다. 임금이 바뀌던 말던 그게 우리랑 뭔상관이냐고. 어쩌면 그 옛날부터 양반은 지금까지도 양반이고 이렇게 닭똥집에 소주 마시는 우리는 그 옛날부터 상놈 자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리는 술잔을 쳤고. 섬데이까지가서 데킬라를 마시고 헤어졌다.

-어제 이모집 에서의 술자리를 떠올리며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허비

우리들은 맨날 폰으로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뭐든간에 할얘기를 다 하다보니까 만나면 별로 할얘기가 없다. 마주보면서도 폰지랄한다고 바쁘다. 먹고 마시기 바쁘고 사람들속을 지나가기 바쁘다. 그랄바에야 아무도 만나지를 말아라. 어떤사람들은 그게 새로운 의사소통방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난 감정의 허비라고 생각한다. 백날 트위터에 대고 징징거려봐야 자기 똥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 그럴시간에 야동이나 보고 딸딸이나 치고 깨끗이 씻는게 더 낫긋다.
-회동저수지를 바라보다가

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반했다 2013/7/20 19:30 @업스테어

* ___ 이게 뭐야 ___ WHAT ___ *

우리는 진짜 남자입니다 우리의 냄새를 맡으로 와라
Come smell the smell of man.

(+ 게스트: 부산최고미녀 달콤씁쓸한입니다!)
+ special guests: The Bittersweetz


* ___ 언제 ___ WHEN ___ *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pm 7: 30




NIS SAVE THE QUEEN 2013/7/20 16:00 @서면 쥬디스태화 옆 거리무대

비상시국 특별기획 락 페스티벌 "NIS SAVE THE QUEEN"

일시 :2013년7월20일(토) 16:00
장소 :부산 서면 주디스태화 옆 거리


가시내들

조그만 가시내들이 모여서 노랠 부르면
온 동네 청년들은 마음 설레여 하네
가시내들 노래 들으러 오네

가시내들-바버렛츠






2013년 7월 9일 화요일

Freight Train

Freight Train, Freight Train Run So Fast
Freight train, freight train run so fast
Please don't tell what train I'm on
They won't know what route I've gone

화물열차,화물열차 빨리 달려라
화물열차,화물열차 빨리 달려라
내가 무슨 기차를 탔는지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무슨 길로 떠났는지 그들이 알지 못하도록

Freight Train -Elizabeth Cotten

2013년 7월 5일 금요일

멜로디 잔치 2013/7/21 17:00 @사직동 그가게

멜로디 잔치 2013/7/21 17:00 @사직동 그가게

http://blog.naver.com/rogpashop/

<룩앤리슨과 하세가와 요오헤이의 월드펑크히트 Vol. 4> 2013/ 7/21 19:30 @스트레인지 푸릇

<룩앤리슨과 하세가와 요오헤이의 월드펑크히트 Vol. 4>
게스트: 김태춘, 더 베거스
장소: 스트레인지 프룻(http://facebook.com/strangefruit.seoul)
일시: 2013년 7월 21일 (일) 저녁 7시 30분
예매, 현매: 20,000원 (1 Free Drink)